‘왕 회장’으로 통하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라는 상호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1946년 4월이다. 서울 중구 초동 106번지 적산 대지를 불하 받아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간판을 걸고 자동차 수리 공장을 시작한 것이다. 정주영은 1991년 펴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나는 공부도 학식도 모자란 구식 사람이지만 ‘현대’를 지향해서 보다 발전된 미래를 살아보자는 의도에서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80명의 종업원을 두고 일하던 정주영은 어느 날 관청에 갔다가 건설업자들이 공사비를 받아가는 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똑같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서 일하는데 자동차 수리업과 건설업의 수익 차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정주영은 당장 ‘현대토건사’ 간판을 더 달았다. 1947년 5월25일이었다. 토건에서 실적을 올리면서 기반을 확보한 정주영은 1950년 1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했다. 사옥을 중구 필동으로 옮겨 ‘현대건설주식회사’로 새 출발을 했다. 6·25가 터지기 5개월 전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자동차그룹·현대백화점그룹·현대그룹·현대중공업그룹·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으로 나뉜 범(汎)현대가 그룹의 시작이었다.
정주영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다. 70여 호가 모여 살던 아산마을은 강원도 동부 지역 가운데 유일하게 들판이 있는 곳이었다. 통고지설(通高之雪·통천과 고성의 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정주영은 부친 정봉식과 모친 한영실의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인영 전 한라그룹 명예회장, 정순영 전 성우그룹 명예회장, 정희영(한국프랜지공업 회장을 지낸 김영주의 부인),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신영 전 동아일보 기자,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동생들이다. 동생 한 명은 어릴 적에 사망했다.
정주영 일가가 아산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증조부가 조부 3형제를 이끌고 청일전쟁을 피해 함경북도 길주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기 때문이다. 정주영은 자서전에서 “조부님은 길주의 기와집과 전답을 처분해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몸 약한 신부와 두 형제분과 함께, 여러 필의 말에 엽전을 나누어 싣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산천 수려한 이곳에 정착했다. 조부는 7남매를 두었는데 다섯 숙부·숙모와 고모는 남하하지 못해서 북한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도 자서전 <재계의 부도옹 雲谷 정인영>에서 부모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남을 도와주고 생색을 내려 하거나 당신이 어렵다고 엄살 한 번 부리시는 일 없이 묵묵하게 당신 철학대로 평생을 보내셨다. 동생 정신영이 “나는 진실로 부모를 위대한 평민적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엄숙주의자였습니다”라고 회고한 것은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활동적이고 성격도 불같았다.’
“우리 주영이 앞날 보살펴주세요”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자서전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 장자(長子)를 중시했던 가풍(家風)을 이렇게 전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중에서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 중 하나는 매일같이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밤 장독대 앞에 정화수를 떠놓고 연신 두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비셨다. 특히 ‘우리 주영이 앞날을 보살펴주세요’처럼 큰형님(정주영)의 앞날에 대한 축수(祝手)에 큰 비중을 뒀다. 축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고 때로는 어두운 새벽녘에 시루떡을 이고 멀리 산골짜기로 올라가 커다란 바위 밑에서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부지불식간에 큰형님이 잘돼야 우리 집안이 잘된다는 의식을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했다.’
정주영이 고향 통천의 평범한 처녀였던 변중석과 결혼한 것은 그의 나이 20세 때였다. 당시 변중석은 16세였다. 정주영이 서울로 온 뒤 변중석의 친정은 통천에서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사했다. 이후 분단이 되면서 변중석은 결혼 이후 한 번도 친정에 가지 못한 채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정주영은 “돈 벌어 함께 가자고 늦추다 보니까 아내에게 몹쓸 짓이 되고 말았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정주영은 늘 변중석에게 고마워했다. “존경하고 인정할 점이 없으면 사랑도 할 수 없다. 아내가 6·25 이후 내가 사준 재봉틀 한 대를 유일한 재산으로 아는 점, 부자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점, 평생 변함이 없는 점들을 나는 존경한다. 이런 사람과 일생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행복이다”고 말한 것이 그 방증이다.
장남 정몽필 1982년 교통사고로 사망
정주영이 전한 부인 변중석에 대한 일화도 재미있다. 정주영이 살 만해진 후 변중석에게 자동차를 한 대 사줬는데 자동차는 집에 두고 택시 타고 도매시장에 가 채소나 잡화를 사서 용달차에 싣고 그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집에서 언제나 통바지 같은 것을 입었는데 누가 찾아오면 그런 채로 문을 열어주니까 손님은 으레 주인아주머니를 따로 찾곤 했다. 변중석이 “내가 바로 안주인”이라고 말해도 좀처럼 안 믿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변중석은 패물 하나 가진 것 없었고 시집 오는 날을 제외하고 화장한 얼굴을 한 번도 정주영에게 보인 적이 없었다.
정주영·변중석은 8남 1녀를 뒀다. 장남 정몽필은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 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시키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1982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것이 사망으로 이어졌다. 부인 이양자도 1991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불행한 운명이었다. 은희·유희 두 딸을 뒀는데 큰딸 정은희는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아이에이치엘(IHL) 대표를 맡고 있는 주현과 결혼했다. 작은딸 정유희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김지용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용평리조트 상무를 지낸 김지용은 고속도로 휴게소 3곳을 운영하는 태아산업의 부사장이자 최대주주다. 은희·유희 두 자매는 2014년 2월 KCC 주식에 투자해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린 사실이 밝혀져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장남의 죽음으로 차남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사실상 장남 역할을 하게 됐다. 한양대 공대를 졸업한 후 1970년 2월 현대에 입사한 정몽구는 현대정공 사장, 현대그룹 회장을 거쳐 2000년 이른바 ‘형제의 난’ 때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정몽구는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 딸인 이정화와 연애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정화는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챙겼고, 19년간 시어머니인 변중석의 병 수발을 도맡았다. 신문배달원이나 미화원들에게도 명절날 선물을 건네곤 했다고 한다.
정몽구의 큰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1985년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선두훈(대전 선병원 이사장)과 결혼했다.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은 종로학원 설립자인 정경진의 아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과, 셋째 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는 미국 MBA 출신인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과 결혼했다. 정윤이·신성재 부부는 2014년 3월 이혼했다. 신성재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부품회사 삼우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1995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해 1997년 정윤이와 결혼했다.
정의선, 강원산업 정도원 회장 딸과 결혼
외아들인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1995년 정도원 강원산업 회장의 딸 정지선과 결혼해 1남 2녀를 뒀다. 강원산업 창업자인 고 정인욱 강원산업그룹 회장의 차남인 정도원은 골재·레미콘·콘크리트 제품을 제조하는 (주)삼표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정몽구와 정도원은 경복고 선후배 사이로 진작부터 친분이 있었다. 1991년 현대차 자재본부 이사로 입사한 정의선은 구매실장, 국내영업담당 전무 등을 거쳐 2009년 부회장이 됐다. 최근 재벌가 3세들이 각종 구설에 오르고 있는데 그는 “예의 바르고 합리적이다”라는 평을 듣고 있다.
정주영의 셋째 아들 정몽근은 명예회장으로서 현대백화점그룹을 이끌고 있다. 정몽구와 마찬가지로 경복고-한양대를 졸업했다. 우경숙과 결혼해 지선·교선 두 아들을 뒀다.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으로 있는 정지선은 황산덕 전 법무부장관의 손녀 황서림과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정지선은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 스페셜스튜던트 과정을 수료했다. 황서림은 서울예고-서울대 미대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동생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겸 현대홈쇼핑 사장은 경복고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정교선은 현대차에 스프링을 개발·공급하는 자동차 부품 전문 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회장의 2녀 가운데 장녀인 허승원과 2004년 결혼했다. 허승원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 치과대를 나왔다. 둘 사이에는 3남이 있다. 정교선은 현대홈쇼핑 사장도 맡고 있다.
4남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우울증을 앓다가 45세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숙명여대를 졸업한 이행자와의 사이에 세 아들이 있다. 이행자의 오빠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출신으로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의 경호를 책임졌던 이진호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다. BNG스틸 사장인 큰아들 정일선은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딸 구은희와 결혼했다. 구자엽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BNG스틸 부사장인 둘째 정문선은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인 김선희와 혼인했다. 현대BS&C 사장인 셋째 정대선은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5남 정몽헌은 1998년 현대그룹 공동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후계자로 주목받기 시작해 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단독 회장이 됐다. 그러나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와중인 2003년 8월 서울 계동 사옥에서 투신했다. 정몽헌은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1976년 결혼해 1남 2녀를 뒀다.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차녀 정영이 현대상선 대리, 장남 정영선 등이다. 정지이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학위를 딴 뒤 외국계 광고회사에 근무하다 2004년 현대상선에 입사했다. 정지이는 신현우 전 국제종합기계 대표와 신혜경 서강대 명예교수 부부의 차남인 신두식과 결혼했다. 현대상선에 대리로 근무 중인 차녀 정영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영학과와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정영선은 현재 미국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6남 정몽준은 정계로 진출했다. 형제 중에 학벌이 가장 좋다. 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았다. 7선 국회의원으로 대통령과 서울시장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딸인 부인 김영명과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정기선은 현대중공업 기획실 상무로 있다. 첫째 딸 정남이는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둘째 딸 정선이는 미국에 있고 막내아들 정예선은 학생이다.
7남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김혜영과 결혼했다. 딸 정정이, 아들 정경선을 두고 있다. 8남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은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권준희와 결혼해 아들 현선, 딸 문이를 뒀다.
정주영의 유일한 딸인 정경희는 정희영 선진종합 회장과 결혼했다. 서울대 상대-하버드 대학 비즈니스스쿨을 나온 정희영은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조선 수주에서 수완을 보여 창업주의 사위가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대건설 입사 동기다. 이후 정희영은 현대종합상사·아세아해운(현 현대상선) 사장을 지내다 독립해 1980년대 초부터 선진해운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선진식품을 창업했고 천마산스키장(현 스타힐리조트)을 운영하고 있다. 선진해운은 주력이 해운과 레저산업으로 한 해 평균 40억원의 흑자를 내고 있다.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외아들인 정재윤은 선진종합 부회장을 맡아 경영을 이끌고 있으며, 큰딸인 정윤미는 박승준 이건산업 사장과, 작은딸 정윤선은 남영비비안 남석우 회장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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