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1910~1987)은 아버지 이찬우(1874~1957년)와 어머니 권재림(1872~1941년)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듣고 자란 단어는 ‘신(信)’이었다. 이찬우는 어린 이병철에게 늘 “비록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이병철은 훗날 기업가로서 크게 성공한 뒤에도 아버지의 말을 잊지 않고 항상 가슴에 새겼다. 또한 이병철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책은 <논어>였다. 할아버지가 세운 서당인 ‘문산정’에서 6세 무렵부터 5년여 동안 <천자문> 등 한학을 배운 이병철은 이때 읽은 <논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어른이 된 뒤에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늘 <논어>라고 답하곤 했다.
이병철가(家)의 혼맥은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과 연결되는데, 그 출발은 한학 공부를 마친 그가 경남 진주의 지수보통학교(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승산마을에 위치) 3학년에 편입한 것이다. 둘째 누나인 이분시가 이병철을 이발소로 데려가 긴 댕기머리를 싹둑 자르면서 이병철은 새 세계를 만났다. 이병철은 진주에서 능성(綾城) 구씨와 김해(金海) 허씨, 즉 지금의 LG그룹과 GS그룹의 창업자들과 인연을 맺는다.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 전 회장도 이때 만났다.
전자 사업 진출로 사돈 구인회와 틀어져
이병철이 고향을 떠나 진주로 왔을 때 둘째 누나인 이분시는 허씨 가문 허순구(1903~1978년)와 결혼해 진주에 살고 있었다. 진주에서 문성당백화점을 키우던 허순구는 나중에 이병철과 손잡고 삼성상회를 운영하고 한국전쟁 이후 파산 상태에 이른 이병철의 삼성물산공사에 재기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그는 훗날 대구에서 풍류방을 운영하며 전통 음악계의 소중한 악보와 악기를 수집해 국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풍국주정공업(주)을 창업했다. 이분시·허순구 부부는 허병기(동양악기사 창업자)·허병천(국제금융 전문가)·허병하(우신시스템 창업자) 등 세 아들을 뒀다. 우신시스템은 국내 최초로 ‘차체 자동화 용접 설비’ 국산화에 성공한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 10%(세계 5위, 아시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병철은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에 편입해 그해 9월 서울로 떠날 때까지 6개월 동안 둘째 누나 집에서 살았다.
이때의 인연이 바탕이 되었던지 이병철은 훗날 LG그룹의 공동 창업자인 허만정의 큰아들 허정구 전 삼양통상 회장과 함께 일한다. 그는 이병철보다 한 살 아래였다. 보성전문 법학과를 나온 허정구는 이병철과 함께 1953년 제일제당, 1954년 제일모직을 창업했다. 1958년 삼성물산 초대 사장을 지낸 뒤 독립해 1961년 삼양통상을 창업했다. 삼양통상은 한때 전 세계 나이키 신발의 80% 정도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기도 했다. 허정구의 3남이 삼양인터내셔널 허광수 회장이다.
이병철은 LG그룹 창업자 구인회와는 지수보통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구인회는 6번, 이병철은 26번이었다. 구인회는 1907년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이병철이 태어난 의령군 정곡면 중교부락과는 남강(南江)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나이는 구인회가 세 살 많았다.
구인회는 나중에 이병철과 사돈까지 맺었다. 구인회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병철의 둘째 딸 이숙희가 1957년 결혼한 것이다. 결혼 후 이병철 회장의 신임을 얻으며 호텔신라 사장 등으로 삼성에서 10여 년간 일해오던 구자학은 1976년 구씨 집안으로 돌아갔다. 이병철이 구인회의 영역이던 전자 사업에 진출한 것이 원인이었다. 사돈인 이병철과 라디오서울·동양TV 등을 공동 경영하기도 했던 구인회는 이병철이 전자 사업에 진출하는 것에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는 급격하게 벌어졌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삼성-LG 세탁기 전쟁’은 이때부터 씨앗이 뿌려졌다고 볼 수 있다. 구인회의 동생 구영회는 삼성 경영에 참여한 유일한 구씨 가문 사람이었다. 이병철이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창업할 때부터 참여한 그는 제일제당 창업 초기에 전무를 지내기도 했다.
신현확 전 총리, 막후에서 상당한 역할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1906~1984년)는 구인회보다 1년 먼저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신창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병철보다 네 살 위다. 이병철의 형 이병각과 친구였던 그는 이병철의 집에도 찾아오곤 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조홍제는 구인회와 어린 시절 친구였고 중앙고보 동창이다. 이병철과 조홍제는 일본 유학을 함께 떠났다. 이병철은 와세다 대학에 다니다 중도 귀국했지만, 조홍제는 호세이 대학 독일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47년 5월 가족을 이끌고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혜화동 125번지에 둥지를 튼 이병철은 명륜동에 살고 있던 조홍제를 만난다. 조홍제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 따르면, 조홍제는 이때 1000만원을 삼성물산공사에 투자했다고 나와 있다. 반면 이병철은 700만원을 투자해 총 자본금이 1700만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내가 75%를 출자했고 몇 지인들이 25%를 출자했다’고 썼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은 15년간 동업하다가 삼성이 국내 최대 기업으로 성장한 뒤 결별했다. 조홍제는 이병철과 헤어진 후 56세에 홀로서기에 나서 오늘날의 효성그룹을 창업했다.
이병철이 기업가로서 대성하기까지 주목되는 두 사람이 있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1920~2007년)와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1917~1986년)이다. 신현확은 이병철과 혼맥으로 연결돼 있지는 않다. 그러나 경북 칠곡 출신으로 대구고등보통학교(경북고 전신)-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TK(대구·경북)의 대부’로 불리며 정·관·재계의 막후에서 상당한 실력을 행사해온 그는 혼맥으로 연결된 것 이상으로 이병철을 도왔다. 이승만 정권 때 39세에 부흥부장관을 지낸 신현확은 관료 시절 이병철이 제일제당·제일모직을 설립할 때 적극 도왔다. 훗날 신현확은 국무총리를 지내고 삼성물산 회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그에 대한 이병철의 신임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한 대목이 이맹희가 쓴 <묻어둔 이야기>에 나온다. ‘(아버지 이병철의) 그분에 대한 믿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을 구두로 남길 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 중 유일하게 그분이 집안 식구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증명이 되겠다.’ 이병철이 사망했을 당시 이사회를 겸한 원로회의 수장을 맡고 있던 신현확은 “고인이 생전에 결정한 유훈에 따른다”며 이건희 체제를 공식화했다.
홍진기 전 장관을 이병철에게 소개한 이도 신현확이다. 이병철은 4·19혁명 당시 발신포 책임자로 구속됐다 나온 홍진기(당시 내무부장관)를 중앙라디오방송 사장으로 앉혔다. 1967년에는 3남 이건희가 홍진기의 장녀 홍라희와 결혼하면서 사돈 관계가 됐다. 이후 홍진기는 라디오방송·동양방송·중앙일보 등 언론 경영 전반을 책임졌다. 이병철은 박식하면서도 세상의 흐름을 내다보는 안목이 탁월하다며 홍진기를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쓴 <유민 홍진기 이야기-이 사람아 공부해>에서 소개되는 홍라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참고할 만하다. “남편(이건희 회장)은 기업인으로서 행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이병철 회장님으로부터는 천부적인 직관력과 동물적인 경영 감각을 물려받았고, 장인인 우리 아버지(홍진기)로부터는 행정 경험, 법에 대한 개념, 그리고 사회에 대한 총괄적인 개념을 배웠다.”
홍진기가 갑작스러운 뇌일혈로 사망했을 때인 1986년 7월17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이병철은 절절한 추도사를 읽었다. “지난 20여 성상을 돌아보면 당신은 하루 한시도 빠짐없이 나와 고락을 함께하며 내 일생을 통해 가장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온 같은 입장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도 나의 사돈이었습니다.…(중략) 유민(홍진기의 호)이 없는 삼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은 모든 면에서 나의 일을 지혜롭게 뒷받침해주었고, 추진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삼성이 오늘에 이른 것은 유민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판사를 지내고 이승만 정권에서 내무부장관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홍진기는 김윤남과의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홍라희가 장녀이고, 장남인 홍석현은 중앙일보 회장, 광주고검장을 지낸 홍석조는 BGF리테일 회장, 홍석준은 보광창업투자 회장, 홍석규는 보광그룹 회장, 막내 홍라영은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이다. 홍석현은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장녀인 신연균과 결혼했고, 홍라영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남인 노철수와 결혼했다. 노신영은 현대를 창업한 정주영의 동생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사돈지간이다. 정세영의 장녀 정숙영이 노신영의 장남 노경수와 결혼한 것이다. 삼성가는 이렇게 현대가와도 연결된다. 홍석현의 장녀 홍정현은 삼양인터내셔널 허광수 회장의 장남 허서홍과 결혼했다. 허광수는 딸 허유정을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의 아들 방준오에게 시집보내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와 사돈 관계를 맺었다.
기업들과 연결되는 이병철가의 혼맥은 자녀 대에 들어와 더욱 넓어진다. 가장 화려한 혼맥을 형성한 것은 역설적으로 삼성가에서 분가한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한 이병철의 둘째 아들 이창희 집안이다. 이창희-이영자 부부의 장남 이재관은 종합물류기업인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의 딸 김희정과 중매 결혼했고 2022년 6월11일 세상을 떠났다. 김희정은 2013년 9월 기준으로 동방그룹의 지분 2.36%를 갖고 있다. 김희정의 동생 김유경은 동국제강 창업주인 장경호의 5남 장상건의 외아들인 장세희와 결혼했다. 차남 이재찬은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최선희와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2010년 8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났다. 3남 이재원은 중견 주정업체인 서영주정 김일우 사장의 딸 김지연과 결혼했다. 막내딸 이혜진은 조내벽 라이프그룹 회장의 장남 조명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혜진은 래딕스글로비즈와 래딕스플러스 대표를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다른 래딕스 계열사에도 이사·감사 등으로 이름을 올렸다.
3남 이건희는 대상그룹·동아일보사와 연결된다. 지난 2009년 이혼했지만 외아들 이재용은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맏딸 임세령과 1998년 결혼했다. 호텔신라 사장을 맡고 있는 첫째딸 이부진도 이혼했다. 1999년 8월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 결혼할 당시 재벌가 딸과 평사원의 결혼으로 주목받았으나 파경으로 끝났다. 2014년 10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남편인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을 상대로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 대법원은 2020년 1월16일 두 사람은 이혼하고 이부진은 임 전 고문에게 141억1천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둘째 딸 이서현은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의 동생인 김재열과 결혼했다. 이병철가 장녀인 이인희의 장남 조동혁은 이창래 서우통상 회장의 딸인 이정남과 결혼했다. 이정남의 오빠 이용구는 전문경영인인데 대림산업 회장을 지내고 2012년부터 동아건설 회장으로 있다.
장남 이맹희 집안은 부인 손복남의 동생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통해 한화그룹과 연결된다. 부인 김교숙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둔 손경식은 장녀 손희영이 이동훈 전 제일화재 사장의 아들인 이재환과 결혼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아들인 이동훈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누이 김영혜의 남편이다. 아들 손주홍은 지난 2006년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의 3녀 성가은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영원무역은 중견 섬유업체로 노스페이스를 판매하는 ㈜영원아웃도어가 관계 회사다.
이병철의 5녀인 이명희는 남편인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을 통해 재계와 연결된다. 정재은의 형인 정재덕 신세계 고문은 1남 2녀를 뒀다. 장녀 정다미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와 결혼한 김민녕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의 아버지가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이다. 김동조의 3녀 김영자는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부인이고, 4녀 김영명은 정몽준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부인이다. 차녀 김영숙의 딸 손정희의 남편은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회장이다.
구인회의 3남 구자학과 결혼한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는 1남 2녀를 두었다. 차녀 구명진이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의 넷째 아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과 1987년 결혼함으로써 삼성-LG-한진그룹으로 연결되는 혼맥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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