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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혼맥] 윤보선 전 대통령

정치인

by 혼맥박사 2020. 11. 2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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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 윤씨인 해위 윤보선 전 대통령(1897~1990)은 역대 대통령 중 혼맥이 가장 화려하다. 윤보선은 1897년 8월26일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 새말에서 아버지 윤치소와 어머니 이범숙 사이이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2년 일출소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대한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1년 6월 영국 유학길에 오른 윤보선은 1930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1932년 귀국했다. 10여 년간 안국동 자택에서 칩거하다 해방을 맞은 윤보선은 미군정청 농상국 고문, 미군정청 경기도지사 고문을 지냈다.

 

1948년 5.10 총선 때 고향인 충남 아산에서 제헌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서울시장, 상공부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1952년 이른바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자 야당으로 노선을 바꿨다. 1954년부터 3~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그 해 8월 내각책임제하에서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1962년 3월24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63년 범야권 세력을 규합해 민정당을 만들어 5대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박정희에게 패했다.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무기한 단식을 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야권후보단일화를 위해 민중당과 합당한 신민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다. 1979년 신민당 총재상임고문을 지내던 중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1990년 노환으로 종로구 안국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할아버니는 안성군수를 지낸 윤영열이고 부친 윤치소는 중추원 의원을 지냈다. 큰할아버지 윤웅렬은 구한말 군부-법무대신을 지냈다. 윤웅렬의 장남이 윤치호다. 차남 윤치왕의 딸 윤선희는 2차 대전 때 OSS 대원으로 활동한 장석윤 전 내무장관과 결혼했다. 삼남 윤치창은 상하이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의 장녀 손진실과 결혼했다. 삼촌 윤치영은 국회의원과 공화당 당의장을 지냈고 당숙 윤치왕은 초대 군의감을 지냈다. 또 다른 당숙 윤치상은 주영공사, 사촌형 윤일선은 서울대 총장, 6촌형 윤영선은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윤보선의 동생으로 경기도지사를 지낸 윤완선은 을사늑약 후 자결한 충정공 조병세의 외손녀 이정순과, 윤보선의 둘째딸 윤원선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증손녀 이진완과 결혼했다. 윤완선의 딸 윤남경은 이화여대를 나와 동아방송PD, 소설가로 활동했다. 윤남경의 남편 전상근의 형은 1공화국 당시 공보실장을 지냈고 기독교방송 사장을 지낸 전성천이다. 윤남경의 언니 윤연경은 이화여대 음대 학장을 지냈다. 방송인 남궁연이 외조카이다.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윤보선의 조카며느리이다. 윤보선의 막내 삼촌인 윤치영의 손자는 KBS 윤인구 아나운서이다.

 

윤보선은 첫 부인 민씨와의 사이에 딸 둘을 뒀다. 첫째 윤완구는 남흥우 전 고려대 법대 학장과 결혼했다. 남흥우는 1939년 3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둘째 윤완희는 사업가와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윤보선은 민씨와 사별한 뒤 1948년 공덕귀와 재혼했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윤보선은 51세, 공덕귀는 37세였다. 공덕귀는 초혼이었다. 윤보선의 안국동 자택에서 한 결혼식의 주례는 함태영 전 부통령이 맡았다.

 

공덕귀는 경남 통영 출생으로 공도빈-방말선의 7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936년 동래 일신고등여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뒤 1940년 일본 요코하마 공립여자신학교를 졸업했다. 김천 황금동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한 이후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사회활동을 해왔는데 1972년에는 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서울연합회장을 역임했다. 1970년대에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1974년 윤보선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 구속자가족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장도 지냈다. 1997년 서울 안국동에서 별세했다. 저서로는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가 있다.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라틴어,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보선-공덕귀의 첫째 윤상구는 연세대 부총장을 지낸 양재모의 딸 양은선과 1980년 10월 결혼했다. 미국 시러큐스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윤상구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동서코퍼레이션 대표이다. 국제로터리재단 이사도 맡고 있다. 양은선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차남 윤동구는 미국 스쿨오브디자인유니버시티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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