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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혼맥] 이명박 전 대통령

정치인

by 혼맥박사 2020. 8. 2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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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2014년 12월18일,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실시되면 증인으로 출석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MB는 “추정해 얘기하면 안 된다. 국회에서 하는 일을 왜 나에게 묻나”라고 오히려 기자들에게 되물었다. 이날은 MB가 ‘친이(명박)계’ 인사들과 송년회를 가진 날이었다. 송년회에는 당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과 이군현 사무총장, 권성동·김용태·조해진 의원,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여야가 MB 정권 때의 자원외교와 관련해 국정조사 특위 구성에 합의한 이후 친이계 인사들이 처음 모인 자리였다.

MB는 퇴임 뒤에 박근혜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경호를 받은 것으로 밝혀져 주목됐다. 그는 2013년 2월 퇴임 후 지난 1년 7개월간 국내 행사에서 1924회, 해외 행사에서 10회의 경호를 받았다. 반면 박 대통령은 같은 기간 ‘국내 행사 316회, 해외 행사 11회’의 경호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덜 움직였다는 것을 감안해도 MB가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안의 혼맥은 어떨까. 역대 대통령 가운데 화려한 편이다. 효성그룹·LG그룹 등과 연결되고 한 다리 건너면 삼성그룹과도 닿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가(家), 오명 전 부총리와도 연결된다.

 

MB는 아버지 이충우와 어머니 채태원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동지상고를 다니던 3년 내내 주야간 통틀어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MB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건설에 입사해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을 지내며 샐러리맨 신화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1992년 현대를 사직한 뒤 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서울시장을 거쳐 17대 대통령을 지냈다.

MB 부친 이충우의 고향은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덕성리다. 그는 1935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그곳에서 목장 일을 거들면서 생활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우유를 짜고 목초를 베고 축사를 돌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이충우는 일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고향에 돌아와 채태원과 결혼했다. 채태원은 지금은 대구광역시 동구로 편입된 반야월에서 자랐는데, 이충우와 중매로 결혼한 후 오사카로 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MB를 비롯한 여섯 남매는 일본에서, 막내 이상필만 포항에서 태어났다.

광복 직후 MB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선은 쓰시마 섬 앞에서 난파했다. 그나마 일본에서 모은 얼마간의 돈도 바다에 잠겼다. 바다에서 건져 올려져 고향 땅을 밟았을 때 MB는 네 살이었다. 빈털터리로 포항에 새로 둥지를 튼 MB 가족은 가난에 시달렸다. 채태원은 과일 행상에 나서야 했고, MB는 밥 대신 곡식으로 술을 빚어 술을 짜내고 난 뒤 남는 찌꺼기인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당당히 만나야 한다”고 말하곤 했던 어머니는 MB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채태원의 영향으로 MB도 기독교 신자가 됐다. MB는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보상을 기대하지도, 받지도 않는 자세는 일찍이 내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자세였다. 지독하게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떳떳하라고, 당당하라고 어머니는 행동으로 가르쳐주셨다. 아버지를 통해서는 양심을 속일 수 없는 사람은 원리 원칙에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리 원칙은 가장 단순한 논리지만, 가장 힘이 있다.”

MB의 형제자매는 7명이지만, 바로 손 위 누이인 이귀애와 막내동생 이상필은 한국전쟁 때 사망했다. MB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누이와 동생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6·25 와중에) 우리는 고향 흥해의 큰아버지 집에 피난해 있었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 아침나절이었다. 귀애 누이는 포항에 와서 태어난 막내 상필이 칭얼거리자 등에 들쳐 업고 마당에 나가 달래고 있었다.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생철 지붕에 주먹만 한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들었을 때 쌕쌕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소스라쳐 놀란 가족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누이와 막내 동생은 마당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등과 이마에서는 피가 솟아오르고 온몸은 화상을 입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애달픈 기도에도 불구하고 모진 목숨을 이어가던 누이와 동생은 두 달을 버티다가 고통 속에서 숨져갔다.’

남아 있는 MB의 형제자매로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구 대부기공) 회장으로 있는 큰형 이상은과 5선 의원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둘째 형 이상득, 누이 이귀선, 여동생 이귀분이 있다. MB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둘째 형 이상득이었다. 이상득은 동지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등록금이 없는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퇴교했다. 그 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상득은 코오롱 사장을 지내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MB는 <신화는 없다>에 이렇게 썼다. ‘둘째 형은 가족의 희망이었다. 형은 서울에서 고학을 하며 우리 못지않게 고생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둘째 형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기 위해 포항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에 매달려야 했다. 나는 당연히 관심 밖이었다.’

‘집안의 기대주’였던 이상득은 MB가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과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의원들을 ‘친이’로 묶어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시장 시절이나 대통령 시절, MB에게 말하기 힘든 내용이나 MB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이상득에게 달려갔다. 이상득은 2012년 7월 저축은행 로비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2013년 9월9일 1년여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사촌처남 김재홍씨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MB의 큰형 이상은은 MB가 현대건설 회장 시절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다스를 차려 크게 돈을 벌었다. 현대그룹으로부터 서울 도곡동 땅을 사고팔며 시세 차익을 남겼다. MB의 아들 이시형은 현재 다스의 임원으로 있다. 이런 등의 이유로 세간에는 ‘다스의 실소유주는 MB’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현대·기아차가 급성장하면서 2008년 4000억원이었던 다스의 연간 매출은 2013년에는 7746억원으로 늘어났다.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이다.

MB는 모교인 동지상고 시절 영어선생님의 소개로 김윤옥 여사를 처음 만났다. 영어선생님 친구의 여동생이 김윤옥이었다. 이와 관련해 MB는 이렇게 회고했다. ‘무엇보다 부잣집 딸이 아니고 부친이 청렴결백한 공직자로 이름난 분이어서 호감이 갔다. 우리가 만난 1970년 봄에 이화여대를 졸업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재학 시절 메이퀸에 뽑힌 소문난 미인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특별한 미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심성이 고운 여자였다.’

MB가 김윤옥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후 찾아간 곳은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퇴계원 공동묘지였다. MB는 말없이 어두운 밤길을 따라와 준 김윤옥을 무덤 속 어머니에게 인사시킨 뒤 결혼했다. 3남 3녀 중 셋째였던 김윤옥이 23세 때였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대구여고, 이화여대 보건교육과를 나온 김윤옥은 통이 크고 성격이 둥글둥글해 날카로운 인상인 MB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선거 때만 되면 (사람들을 만나느라) 살이 찐다”고 말할 정도로 현장에 잘 적응하는 ‘선거 체질’이다. 김윤옥의 부모는 MB보다는 맞선을 본 검사를 사윗감으로 선호했지만, 큰오빠가 자수성가한 MB를 적극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인 12월19일은 이명박의 생일(양력)이고 2007년 대선 투표일이기도 했다.

김윤옥의 막내동생은 김재정이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12월 본선을 뜨겁게 달구었던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의 핵심 당사자였다. MB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던 1985년, 맏형인 이상은과 처남인 김재정은 서울 도곡동 땅 4240㎡를 15억6000만원에 샀다가 10년 후 263억원을 받고 포스코건설에 팔았다. 그 땅의 실소유주가 MB 아니냐는 게 논란의 핵심이었다. 김재정은 MB가 대통령으로 있던 2010년, 당뇨병과 신부전증에 의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MB의 큰형 이상은과 함께 설립한 ㈜다스의 감사이자 최대주주였다. 1978년부터 1992년 사이 전국에 224만㎡(67만7600평)에 달하는 땅을 사들인 땅 부자이기도 했다.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은 김윤옥의 사촌오빠다. 1965년 전매청 9급공무원으로 출발해 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7~2001년 담배인삼공사 사장을 지냈다. 2011년 12월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3억9000만원을 받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두 달 전 의사 집안과 사돈 맺고 며느리 봐

이명박-김윤옥은 딸 셋을 먼저 낳고 아들 하나를 뒀다. 장녀 이주연과 차녀 이승연은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기악을 전공했다. 막내 이수연은 이화여대 미대를 나왔다. 모두 전업주부다. 장녀 이주연의 남편은 이상주 삼성전자 해외법무팀장(전무)이다. 그는 애플과의 특허소송 등 특허 부문을 제외한 해외 법률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상주는 사법연수원 25기 출신으로 검사로 재직하다가 2004년 삼성화재에 입사한 뒤, 2008년부터 삼성전자로 옮겨 해외 법무 일을 맡고 있다. 그는 MB가 대통령이던 시절 정무적인 측면에서 나름으로 역할을 했다. 한때이기는 했지만 정권 초기 생생한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창구였다. 둘째 이승연의 남편은 서울대병원 내과 전문의인 최의근 박사다. 최의근의 부친은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전문의인 최윤식 교수인데 그는 MB의 대통령 시절 주치의를 지냈다. 이승연은 2008년 서울대병원 홍보대사로 위촉돼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미술을 전공한 셋째 딸 이수연의 남편은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다. 조현범은 이수연의 리라초등학교 선배로 주변 친구들과 함께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온 것이 결혼으로 이어졌다. 이수연은 MB가 서울시장 선거를 치를 때 넥타이 코디를 전담하는 등 전공을 살려 선거 과정에서 아버지를 적극 도왔다. 조현범의 부친은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이다. 조양래는 조석래 전 전경련 회장(효성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조석래는 “경제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며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사실상 MB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MB는 셋째 사위 조현범을 매개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연결된다. 조석래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의 부인은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의 셋째 딸 이미경이고, 이미경의 언니 이윤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전재만과 결혼했다.

MB의 아들 이시형은 2002년 서울시청에서 슬리퍼를 신고 히딩크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사진을 찍어 구설에 올랐다. 2011년에는 별 수입이 없던 시형씨가 거액을 들여 땅을 산 사실이 드러난 ‘내곡동 사저 사건’으로 다시 화제에 올랐다. 현재 (주)다스의 임원으로 있는 이시형은 2014년 10월 결혼했다. 부인 손 아무개씨는 고교 시절 유학을 떠나 미국 동부 지역 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씨의 부친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이고, 모친은 강남에서 아들 명의의 외식업체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동생은 힙합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상득은 1남 2녀를 뒀다. 아들 이지형은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를 지낸 후 2011년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겼다. 장녀 이성은이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의 아들인 구본천 LG벤처투자 사장과 결혼하면서 LG가와 혼맥으로 연결된다. 구자두는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이다. 즉 MB의 조카사위 구본천은 구자경의 조카다. 또 구자두의 바로 위 형인 구자학의 부인은 삼성 이병철 회장의 셋째 딸인 이숙희다. 이렇게 삼성가와도 연결된다. 서울대 음대를 나온 막내 이지은은 오명 전 과학기술부총리의 장남인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오명과 이상득은 육군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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