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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혼맥] 전필립 파라다이스그룹 회장

경제인

by 혼맥박사 2020. 11. 9.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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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립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이하 전필립)의 부친은 고 전락원 파라다이스그룹 창업자(이하 전락원)다. 전락원은 1927년 5월16일 목사로 있던 전주부와 계성옥 사이 2남7녀 중 둘째 아들로 종로구 계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고향은 평북 선천이었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전주부-계성옥은 남북한에 14개의 교회를 설립했다. 전주부는 성경 속 에덴 동산을 동경하며 외아들의 이름을 '낙원'이라고 지었다. 


누나가 유명한 문인인 전숙희 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장이다. 전숙희는 2010년 세상을 떠났다. 전숙희는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으나 아버지가 교회에 전재산을 기증한 뒤 가난에 시달렸다. 10대 시절엔 수술비가 없어 인턴 실습용 무료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1931년 이화여고 시절 동맹휴학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이화여전 영문과에 입학 뒤엔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며 자퇴서를 냈다. 전숙희는 강원용 목사가 있던 경동교회를 다녔다. 전숙희는 연세대 의대를 나온 강순구 박사와 결혼했다. 


전락원은 전필립, 전원미, 전지혜 등 1남2녀를 뒀다. 전지혜는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자녀다. 전지혜는 2004년 11월 아버지인 전낙원이 사망함에 따라 장남과 장녀, 차녀가 공동상속인으로서 1/3씩의 상속지분을 갖는데도 장남인 전필립이 상속재산의 공정한 분할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으나 2007년 10월3일 패소했다. 


박성범 전 의원은 "전락원의 기업 정신은 나라가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 아니냐는 철학에서 출발한다"고 회고했다. 목사가 되기를 바랐던 부친의 뜻과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미군 부대를 찾아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운수업에 첫 발을 들여놓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교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중구 소공동에 있던 국제호텔 내에 '블루룸'이라는 사교 클럽을 개업해 한국 최초의 재즈음악단을 조직했다. 그러나 국제호텔이 한국상업은행에 매각되는 바람에 조선호텔로 자리를 옮겨 '프린세스룸'이라는 서울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사교 클럽을 운영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전락원은 1967년 8월 인천 올림포스호텔에 국내 제1호 카지노를 개장했다. 1968년 3월에는 워커힐호텔 카지노를 운영했다. 1972년에 운영권을 인수했다. 장철희 전 한국관광협회장은 전락원 추모집 <드높은 이상향을 꿈꾼 도요새>에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워커힐호텔은 군사정부가 외화획득을 위해 건설한 특급호텔이었다. 당초 기대와 달리 호텔 영업이 신통치 않아 실적이 매우 저조했다. 그래서 국제관광공사에서는 우리나라 경제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달러를 조금이라도 더 벌어들이기 위해 워커힐 내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개설하기로 했던 것이다. 전락원은 고심 끝에 정부의 제의를 받아들여 워커힐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개설하기로 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적 견지에서 결심하여 탄생한 기업이었다. 정부 당국자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많은 달러를 벌어들여 우리나라 경제개발 초기에 큰 기여를 했다. 오늘날 파라다이스그룹을 이루어내는 밑바탕을 만들었던 것이다."


1972년 자신의 이름인 ‘낙원’을 따서 ‘파라다이스투자개발’을 세웠다. 전락원은 1970년 누나 전숙희를 도와 동서문화연구원을 설립해 <동서문학>을 발간했다. 1975년 2차 오일쇼크 때는 싱가포르 석유 거상을 찾아 원유 공급을 부탁해 평소의 2배를 공급받아 우리나라가 석유 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했다. 1979년 학교법인 계원학원을 설립했고 이듬해 예술고등학교를 개교했다. 1993년에는 계원조형예술대학을 세웠다. 전락원은 계원학원이 미국의 파슨스 예술학교처럼 성장하기를 바랐다. 같은 해 외화밀반출 혐의로 구속됐다 사면됐다. 그룹 이름이 파라다이스그룹로 바뀐 것은 1997년이다. 2004년 11월3일 세상을 떠났다. 지병인 전립선암으로 고생하다가 그해 5월에 미국에서 귀국한 뒤였다. 절친이었던 방우영 전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전락원의 무덤 속에 그가 즐겨 마시던 '로마네 꽁띠'를 함께 파묻어 주었다. 방우영은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길 때 도취하지 말고 발 빠르게 손을 떼고, 질 때 미련 없이 후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고 소개했다. 



1961년생인 장남 전필립은 
중앙대 경영학과와 미국 버클리음대를 졸업했다. 중앙대 시절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 등과 밴드 활동을 했다. 미국 유학을 떠나며 김종진에게 전태관을 소개한 것도 전필립이었다. 1992년 옛 파라다이스산업이자 현재 파라텍인 극동스프링크라(2014년 11월 매각)에 입사한 뒤 이듬해인 1993년 파라다이스투자개발 전무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그뒤 1997년 파라다이스 대표이사 부사장과 부회장을 거쳤다. 2005년 11월 회장이 됐다. 현재 파라다이스는 서울워커힐, 제주그랜드, 인천파라다이스시티, 부산해운대 등 4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 중이다. 부인은 이화여대에서 섬유예술학을 전공한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세계적인 영국 미술전문 계간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렸다. 장남 전동혁, 차남 전동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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