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가 제24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당선됐다. "협회가 사람보다 돈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대한체육회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단할지 아직은 두고봐야 한다. 최철원은 이른바 '맷값 폭행' 사건의 당사자다. 2010년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던 화물차량 기사를 사무실로 불러들여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뒤 맷값이라며 2천만원을 던졌다. 이 범행으로 1심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실형을 면했다. 이 사건은 영화 '베테랑'의 소재가 됐다. 최철원은 SK창업주인 최종건의 둘째 동생인 최종관 전 SKC고문의 아들이다. 최종건의 첫째 동생은 최종현 전 SK회장(최태원 회장의 부친)이다.
SK그룹의 창업자 최종건은 1926년 경기도 수원의 벌말(지금의 평동)에서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의 4남 4녀(양분-양순-종건-종현-종분-종관-종순-종욱)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풍소학교를 졸업한 최종건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스스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선택해 진학했다. 직업학교를 졸업한 최종건은 부친의 권유로 고향에 있는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선경직물주식회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기업들인 ‘선만주단’과 ‘경도직물’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 이 두 회사의 앞 글자를 따서 ‘선경(鮮京)’이라는 회사 이름이 만들어졌고, 그 영문 이니셜을 따서 지금의 SK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시 최종건은 3급 기사 자격증이 있는 기술자로 입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수도 생겼다. 18세에는 생산부 2조장으로 발탁됐다. 100여 명의 종업원을 편성해서 운영하고, 생산 계획과 품질 관리까지 도맡아 운영하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SK 창업의 밑바탕은 최종건이 선경직물을 불하받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광복 이후 최종건은 명목상의 한국인 주주들이 관리인이 된 선경직물에서 생산부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6·25가 일어나면서 선경직물은 잿더미가 돼버렸다. 폐허 속에서 불에 탄 공장을 인수할 사람이 없었다. 최종건은 선경직물 토지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던 차철순과 협의해 그가 갖고 있던 지가증권으로 불하 계약금액인 13만환을 납부하고 1년 내에 이 금액을 현금으로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차철순과 공동으로 불하를 받았다. 이후 최종건은 13만환을 모두 갚고 차철순으로부터 공동매수인 권리포기각서를 받은 후 1953년 10월1일 선경직물 창립을 선포했다.’
원사 구입 자금과 인건비로 어려움을 겪던 최종건의 숨통을 틔워준 것은 당시 최고의 인기 상품이었던 ‘닭표 안감’과 ‘봉황새 이불감’이었다. 이 두 상품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최종건은 선경직물 매수대금의 잔금을 다 갚았고 큰돈을 벌었다. 1956년에는 수원시 최고 득표를 기록하며 수원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1962년 무역회사인 선경산업을 창립했고 1966년에는 선경화섬을 설립하는 등 사업 확대에 매진한 최종건은 1963년, 건국 후 민간 기업 대표로는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직물에서 원사까지 일괄 생산 체제를 갖춘 이후 그의 꿈은 정유공장을 짓는 것이었다. 선경석유를 설립했으나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정유공장 설립은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았다.
선경건설을 만들어 1973년 2월에는 워커힐호텔을 인수했다. 1962년 정부가 추진하는 관광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워커힐은 운영권이 교통부 산하의 국제관광공사에 있었다. 10년 내내 적자를 면치 못해 정부가 장충단의 영빈관과 함께 민간 기업에 팔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최종건은 워커힐을 내정가보다 비싸게 일시불로 인수하겠다고 선언했고, 박정희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호텔을 만들어달라”는 조건을 붙여 수락했다. 워커힐 인수는 그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프로젝트였다. 그해(1973년) 11월, 최종건은 48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생을 마쳤다.
급작스러운 최종건의 죽음으로 그룹의 운영을 맡은 것은 동생인 최종현이었다. 고(故) 최종현 회장은 자신이 쓴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에서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경의 모체인 선경직물은 1953년에 창립되었다. 6·25 사변으로 모두 파괴된 기계들을 모아 15대의 직기를 재조립해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1953년 4월이었다. 나는 이 시기를 선경의 실질적인 창업 시기로 보고 있다. 전 회장(최종건)이 공장 관리를 맡았고 나는 판매 및 구매 관리를 맡았는데 장사가 잘되었다. 1954년 나는 사업에서 손을 떼고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했는데 전 회장의 독촉에 못 이겨 1962년 11월 귀국했다. 그때 와서 보니 15대의 직기가 162대로 늘어났고, 새로 주문한 140대가 설치되고 있었으므로 8년 동안 20배 정도 확장된 셈이었다. 아세테이트 원사공장과 폴리에스테르 원사공장을 세우게 됐다. 그러던 중 1973년 11월 전 회장이 돌아가시게 되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본인이 선경을 맡게 되었다.’
최종현은 형의 숙원이자 그룹의 전략 사업이었던 정유업에 관심을 가졌다.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을 인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며 정보통신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오늘에 이른다.
최종건 창업주는 24세에 노순애와 결혼했다. 평소 노순애를 눈여겨본 큰누나 최양분이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건은 노순애와의 사이에 3남 4녀(윤원-신원-정원-혜원-지원-예정-창원)를 뒀다.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딸 채헌씨와 결혼했다. 미국 엘론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78년 선경합섬(SK케미칼 전신)에 입사했다. 1992년 12월 SK케미칼 부회장에 오른 뒤로는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SK케미칼 회장으로 있던 2000년 나이 50세에 지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슬하에 1남 3녀(서희-은진-현진-영근)를 뒀다. 아들 최영근은 현재 SK그룹 계열사의 급식 사업을 전담하는 후니드의 대주주다.
최종건 창업주의 차남인 최신원 SKC 회장은 백종성 전 제일원양 대표의 딸 백해영과 결혼해 1남 2녀(유진-영진-성환)를 뒀다. SKC 상무인 아들 최성환은 2010년 신조무역 최용우 회장의 장녀 최유진과 혼인했다. 최신원-최성환 부자가 모두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쳐 병역 미필자가 많은 재벌가 자녀들과 대비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종건의 장녀 최정원은 고학래 전 사상계 고문의 아들 고광천과 혼인했고, 차녀 최혜원의 남편은 박장석 SKC 부회장이다. 4녀 최예정의 시아버지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으로 최종건과 이후락은 호형호제할 정도로 관계가 남달랐다. 최예정의 남편은 이후락의 3남인 이동욱이다. 이동욱의 형인 이동훈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누나인 김영혜와 결혼했고, 이동훈의 장남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장녀 손희영과 혼인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SK가(家) 혼맥은 CJ가·한화가와 연결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고 최종현 전 회장과 고 박계희 여사의 장남이다. 부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다. 두 사람은 이혼 소송 중이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채서영 서강대 영문과 교수와 결혼했다. 최태원은 2013년 1월 횡령 혐의로 기소되었고, 징역 4년형이 확정돼 수감 생활을 했다. 최재원도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돼 복역 했다. 최종현 전 회장의 막내딸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은 SK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던 김준일씨와 결혼했지만 이혼했다.
최종건 전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최종관 전 SKC 고문은 장명순과의 사이에 1남 6녀를 뒀다.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가 유일한 아들이다. 최철원은 한숙진과 결혼했다. 장녀인 최순원은 재벌가에서는 독특하게 외국인 존 캐리파크너와 결혼했다. 3녀 최경원은 김종량 전 한양대 총장과, 4녀 최은성은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의 차남인 나진호와 혼인했다. 최종건 전 회장의 막내 동생인 최종욱 전 SKM 회장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았던 조동성 서울대 교수의 누나 조동옥과 결혼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재무부장관을 지낸 서봉균씨의 사위인 조동일 서울대 공대 교수의 누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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