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의 혼맥] 최재형 전 감사원장

정치인

by 혼맥박사 2021. 6. 23. 22:19

본문

728x90
반응형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1956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릴 적 아버지 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형이 출생지가 경남 진해로 돼 있지만, 사실 거긴 두어 달밖에 안 살았어요. 재형이가 태어나던 해인 1956년 10월인가 11월, 제가 서울에 있는 해군본부로 발령이 났어요. 그전에는 경남 진해에서 관사(館舍) 생활을 했는데, 서울에는 집이 없었어요. 그래서 살 집을 구하러 다녔죠. 그때 찾아간 게 창덕궁 부근 종로구 와룡동에 있던 어느 기와집이었어요. 집에 들어가니까 문 왼쪽에 머슴방이 월세로 나와 있었어요. 한 세 평쯤 되는 그 방을 얻었어요. 재형이가 9월 2일 태어났으니까 태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거죠. 그 핏덩어리만 서울로 데리고 올라와, 그 머슴방에서 한동안 둘이 같이 살았죠. 큰아들하고 아내는 어머니랑 진해에 있었고요.”

와룡동 단칸방에서 살던 최재형은 회현동을 거쳐 동교동으로 이사했다. 그 사이 최영섭 대령은 전역을 했고, 진해에 있던 가족들도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게 됐다. 당시 최재형은 한영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후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경기고 시절 정두언 전 의원 등과 같은 반 친구였다. 사법연수원 13기다. 이후 줄곧 판사의 길을 걸었다. 서울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한상대 전 검찰총장, 조대환 전 청와대 민정수석, 최성준 전 방송통신위원장, 허익범 드루킹 특별검사팀 특별검사 등이 연수원 동기다.

 

[10분으로 보는 최재형의 인생스토리와 혼맥]

https://youtu.be/PcuzFylDRis

최재형의 부친은 해군사관학교 부교장을 지내고 '대한해협 전투의 영웅'으로 불리는 고 최영섭(崔英燮·93·해사 3기) 예비역 해군 대령(현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이다. 지난 2021년 6월 8일 별세했다. 최재형은 최영섭 대령의 4남 중 차남이다. 최영섭 대령은 6·25전쟁 발발 다음날인 6월26일 우리 해군이 북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에서 승리한 ‘대한해협 해전’의 실질적인 주역(主役)이다. 이 해전은 6·25전쟁 최초의 해전이자 첫 승전(勝戰)이었다. 당시 최영섭 대령은 2함대 소속으로 백두산함의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였는데 부산 동북쪽 해상에서 무장 병력 600여 명을 태우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1000t급 북한군 무장 수송선을 5시간에 걸친 추격과 교전 끝에 격침시켰다. 이 전투의 승리로 6·25전쟁 초기 북한군의 후방 공격을 차단할 수 있었고 부산항을 안전하게 확보해 이후 179만명의 유엔군과 막대한 양의 전쟁 물자가 부산항을 통해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최재형의 집안은 ‘병역 명문가’다. 부친 최영섭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내 밑에 동생 2명이 있는데 바로 밑의 동생은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하고, 한 명은 해군 부사관 출신입니다. 아들 넷 중 첫째는 해군 대위로, 재형이는 육군 중위로, 셋째는 공군 대위로, 넷째는 육군 소위로 복무했어요. 손자 1명은 해병대 중위로 DMZ(비무장지대) 소대장을 했고, 2명은 육군에서 복무했지요”라고 말했다. 최재형의 두 아들도 각각 해군과 육군에서 복무했거나 복무하고 있다.

 

최재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중요 키워드 중 하나는 개신교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배경엔 부모가 있었다. 최영섭 대령과 아내 고(故) 정옥경씨는 동교동 인근 신촌교회에 출석했다. 최재형도 자연스럽게 신촌교회를 다녔다. 신촌교회 장로인 그는 감사원장에 임명된 후, 휴무(休務) 장로가 됐다. 아내 이소연씨도 신촌교회 권사다. 최재형은 신촌교회에서 ‘평생지기’ 강명훈(姜明) 변호사를 만난다. 최재형이 학창 시절, 소아마비 친구를 2년간 업고 등교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이 일화 속 ‘친구’가 바로 강명훈 변호사다. 그들의 피보다도 진한 우정은 1981년, 두 사람이 나란히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큰 화제를 낳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해 《조선일보》 6월18일자에 ‘신앙(信仰)으로 승화한 우정(友情) 10년’이란 제하의 기사로도 실렸다.

 

최재형-이소연 부부에게는 두 딸이 있고, 그 밑으로 아들 둘을 각각 2000년(차남)과 2006년(장남) 입양했다. 아내 이소연씨는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했다. 이소연씨의 선친이자 최재형의 장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중견 기업 (주)한국우드워드를 운영했던 고(故) 이해원(2015년 별세)씨다. 장녀인 이소연씨 밑으로 여동생 둘, 남동생 한 명이 있다. 첫째 여동생 이소희의 남편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한문희다. 둘째 여동생 이소진의 남편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뒤 논설주간으로 있는 김창균이다. 즉 최재형과 김창균은 동서지간이다. 막내 남동생 이창환은 (주)한국우드워드 사장이다. 최재형의 형 최재신은 고려개발 사장을 지냈고 동생 최재민은 서울 양재동에서 소아과를 운영한다. 막내 동생 최재완은 광주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이다.

 

부친 최영섭은 최재형이 감사원장으로 발탁됐을 때, 특별히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사자성어를 써줬다.

단기출진(單騎出陣)

불면고전(不免苦戰)

천우신조(天佑神助)

탕정구국(蕩定救國)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