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성김은 부모를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가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하고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검사로 근무하다 1990년대 중반, 국무부에 들어가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를 담당해왔다. 2003년에는 주한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한국 이름은 ‘김성용’이며, 김 내정자의 외삼촌은1960~70년대 유명한 아나운서였던 임택근 전 <문화방송>(MBC) 전무로, 가수 임재범씨가 성김의 외사촌 동생이다. 김성김은 한국계 최초의 국무부 한국과장(2006년)으로 주목받은 이래 2008년부터 북핵 6자회담 대표를 맡아오는 등 북핵 문제의 실무 책임자로 활동했다.
‘아나운서계의 전설’로 불린 임택근은 특히 스포츠 캐스터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로마‧도쿄‧멕시코 올림픽 등에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한 임택근식 중계방송은 이국땅의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는 짜릿함을 선사했다. 이런 추억에 힘입어 지난 2002년 한‧일 축구월드컵 때 개막전과 한국 대 폴란드전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당시 MBC라디오가 마련한 특별 중계 이벤트를 통해 만 70세의 임씨가 캐스터와 해설자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소리로 듣는 축구 경기'의 진수를 선보인 것. 당시 그는 “올드팬들한테 정말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1932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방송에 입문했다. 연희대학교(연세대 전신) 정치외교학과 1학년 재학 중에 중앙방송국(KBS 전신) 아나운서 모집 소식을 듣고 응시했다. 처음엔 재학생이라 안 된다고 했다가 그의 집념에 못 이겨 뽑아준 이가 노창성(1896~1955) 전시중앙방송국장이다. 노창성은 한국 첫 패션디자이너로 불리는 노라 노(노명자)의 부친이다.
쩌렁쩌렁한 미성(美聲)에 수려한 외모, 아나운서만이 천직이라는 집념과 투지에 힘입어 20대 중반에 이미 당대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스무고개''노래 자랑''퀴즈 열차' 등 숱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64년 문화방송(현 MBC)으로 이적하고 69년에는 최초의 아침 토크쇼 '임택근 모닝쇼'를 맡았다. 국내 TV 프로그램 사상 MC 이름이 들어간 첫 사례였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71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다시 방송가로 복귀해 80년 문화방송 및 경향신문사 사장직무대행 등을 지냈다.
퇴사 후에는 개인 사업을 했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대한고용보험 상무 등을 지냈다. 1992년엔 자신의 방송인생 40년과 한국 방송의 역사를 회고한 『방송에 꿈을 싣고 보람을 싣고』(문학사상사)를 펴냈다. 90년대 이후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져가던 그가 다시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다소 복잡한 가족사가 알려지면서다. 탤런트 손지창씨가 2001년 언론을 통해 “1970년대 최고 아나운서로 명성을 떨쳤던 임택근씨가 나의 생부이며, 가수 임재범씨가 이복 형”이라고 밝히면서 수면에 떠올랐다.
임택근이 혼외로 둔 두 번째 가정에서 난 아들이 임재범, 세 번째 부인과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 손지창이다. 임택근은 이들의 성장 과정을 외면하고 호적에 올리는 것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2011년 MBC 음악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통해 다시금 인기를 얻은 임재범이 굴곡진 성장 과정을 털어놓으면서 이들 삼부자 관계가 새삼 조명됐다. 임택근은 2020년 1월 11일 88세로 별세했다. 2019년 10월 심장 문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11월 뇌경색 진단을 받고 폐렴 등 합병증으로 투병하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성김의 아버지는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주일공사를 지낸 김재권(본명 김기완)이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본에 근무하고 있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인 1998년 2월 18일 DJ 납치 사건을 주도한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을 인터뷰한 기사(1998년 2월 19일자)에 따르면 김 전 공사는 DJ 납치 지시를 내린 이 전 차장에게 심하게 반발했고, 이에 이 전 차장은 “내 선에서 처리할 사안이 아니니 반대 의견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직접 말하라고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는 자신의 블로그 ‘시크리트 오브 코리아’에서 국가정보원의 ‘김대중납치사건 진상보고서’를 인용해 당시 김 전 공사가 반발한 구체적인 상황을 공개했다. 국정원 보고서는 당시 윤진원 해외공작단장의 증언을 인용해 “김 전 공사가 본부에 전문(電文)을 보내 ‘박정희 대통령의 결재사인을 확인하기 전에는 공작을 추진할 수 없다’고 버틴 일이 있다”며 “확인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후에 정보제공 등 협조를 했다”고 적었다.
김 전 공사는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 그랜드팔레스 호텔에서 발생한 DJ 납치 사건에 연루돼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 및 일본 책임자인 도널드 그레그(전 주한 미대사)에게 DJ 납치 관련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공사는 DJ 납치 직후에도 “절대로 DJ를 죽여서는 안 된다” “살려서 돌려보내야 한다” “불필요한 희생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국정원 보고서는 밝혔다. 김 전 공사는 1974년 도미(渡美) 후에도 1급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다가 이후 귀국을 희망해 1979년 3월 27일 한국보험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1982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994년 6월 2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임택근의 동생 임양근도 1967년 동양방송 아나운서 4기로 1970년대 형과 같이 아나운서로 활동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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