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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과 전두환-전경환

경제인

by 혼맥박사 2021. 10. 2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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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이병철이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업한 1938년에 전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삼성국수 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이병철의 맏아들인 이맹희가 쓴 <묻어둔 이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더불어 자란 친구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다." 이맹희와 전두환이 친구라는 것이다. 삼성상회 앞 개천 너머 빈민촌에 전 전 대통령 가족이 살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개천 너머 아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새로운 관계가 되는 것이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가 이른바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구속되고 이병철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장남인 이맹희가 삼성 경영을 맡게 된다. 이창희가 풀려나게 되고 이병철이 경영 복귀를 생각하게 되는 시점에 이창희가 아버지 이병철에 대한 투서를 청와대에 하는 일이 발생했다. 6개항에 걸친 탄원서인데 100만 달러 비자금 조성해 반출했다, 제일제당이 탈세했다 등등의 내용이었다. 이 투서를 제일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이 당시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고 있던 전두환 중령이었다. 투서는 전두환-박종규 경호실장을 거쳐 박정희대통령에게 보고된다. 박정희는 "자식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은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사건을 묻을 것을 지시하고 해외 비자금 건에 대해서만 알아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병철은 이창희를 해외로 내쫓았다. 미국에서 6년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나중에 돌아와 빌며 새한그룹을 창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어쨌든 이 투서 사건을 계기로 이병철은 장남 이맹희도 의심한다. 이맹희와 전두환이 친구였기에 둘 사이에 무슨 모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맹희는 경북중고등학교를 나왔다.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김윤환 등이 동기동창이다. 특히 정호용과 가까웠다. 전두환은 대구공고를 나왔는데 노태우는 대구공고 다니다가 전학왔다. 이 투서사건이 삼성 후계 구도에도 영향을 미쳐 3남 이건희에게 추가 기울게 된다. 이맹희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두환이 그런 중대한 사건을 접하고도 주무를 생각만 했지 나와 논의하거나 수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배신감 느꼈다"는 것이다. 

 

이병철과 전두환의 악연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1980년 신군부가 12.12 통해 집권하면서 언론통폐합 할 때 이병철은 자신이 세운 TBC를 뺏기게 된다.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이 삼성비서실에서 경호 업무를 보면서 근무한 적도 있다. 

 

https://youtu.be/aFBYOE3v_Do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가 10월 21일 사망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장지는 용인 평온의숲. 뇌경색과 다발성 심장판막 질환 등의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해온 전씨는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군인 출신으로 예편 뒤 삼성그룹 비서실, 청와대 경호실 경호계장으로 일했다. 청와대 경호실 경호계장으로 일하던 1979년 10·26 사태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 전 대통령에게 상황을 곧바로 알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80년 전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전씨는 대통령경호실 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 등을 맡았으나 1989년 공금 7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7년, 벌금 22억원 등을 선고받았다.

 2004년엔 아파트 신축공사에 필요한 1억 달러 자금을 유치해 주겠다고 건설업자를 속여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6억원을 받는 등 총 15억원과 7만 달러를 챙긴 혐의로 기소돼 2010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았다. 형 확정 2개월 뒤인 같은 해 7월 건강상 이유로 처음 형 집행 정지를 받는 등 각종 병환을 이유로 총 8차례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고, 2017년 3월 가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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