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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어떻게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나. 이병철의 반도체 사업 진출 풀스토리

경제인

by 혼맥박사 2022. 12. 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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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 창업자

삼성의 반도체 산업 시작은 1974년 12월6일 부터다. 이날 삼성은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한국반도체는 서울대를 나온 강기동 박사와 미국인 서머스가 공동으로 운영했던 칩설계, 웨이퍼 생산 라인을 갖춘 한국 최초의 반도체 공장이었다. 한국반도체는 이후 어려움을 겪다가 1978년 나머지 지분 50%도 삼성에 넘긴다. 한국반도체 지분 100%를 인수한 삼성은 이름을 삼성반도체로 바꿨다.

한국반도체 모습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는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가 쓴 <이 사람아, 공부해>(홍라희의 부친인 유민 홍진기 일대기이다)에서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병철 이건희 홍진기의 합작품이다." 이병철이 일본에서 반도체 얘기를 듣고 홍진기에게 검토해보라고 했고 홍진기는 이건희에게 "자네도 공부해두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비를 들여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은 이건희였다.

 

[10분으로 요약한 삼성의 반도체 진출 역사]

https://youtu.be/_0dLZqdApGY

 

 

 

고 김영희 대기자가 쓴 유민 홍진기 이야기

삼성반도체는 초반에 트랜지스터, IC 등을 생산했다. 그러나 돈을 벌기는커녕 자본까지 잠식되는 상황에 이르다가 1979년 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흡수됐다. 동시에 삼성전자 TV 생산부와 사업부 인력까지 끌어왔다.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79년 9월 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기술자들을 초청해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결단을 내린 것은 이병철 회장이었고 홍진기는 실현 관련해 조언을 했다"고 언론에 증언했다.

IC 등을 생산한 한국반도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1980년 3월, 삼성전자가 경북 구미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이 회사는 한국통신에 전화교환기를 납품하던 회사였다.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1982년 10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한국전자통신으로 이관됐다. 한국전자통신의 수익을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이병철이 반도체 공장을 세울 경기도 이천 일대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1983년 3월15일 일본 도쿄에 머물던 이병철은 이른바 '도쿄선언'을 했다.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진출하겠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렸다. '왜 우리는 반도체 산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이었다. "~삼성은 지원이 거의 없는 우리의 자연적 조건

에 적합하면서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만이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제2의 도약을 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하여 첨단 반도체 산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

1983년 9월 기흥공장 건설에 착공했고 그해 12월에는 부천 공장에서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87년 한 해만 삼성은 반도체 분야에서 500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누적 적자로 치면 1400억원에 달했다. 1987년 세상을 떠난 이병철은 생전에 반도체 흑자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반도체야말로 새로운 먹거리라는 확신을 갖고 10여 년에 걸쳐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이병철 사후 이듬해인1988년 처음으로 3200억원의 흑자를 봤다. 그 이후 기록한 천문학적인 흑자는 우리가 잘 아는 바다.

이병철은 1986년 2월12일 펴낸 자신의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과 관련해 이렇게 기록했다.

막대한 투자, 기술 혁신 주기가 짧은 반도체 생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그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 삼성의 내일이 열린다고 확신한다. 73세의 결단이었지만 경위가 있다. 1980년 봄, 일본 방문길에 지인이 찾아와 일본이 반도체 등 첨단기술산업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을 얘기했다. 1982년 21년만의 미국 방문에서는 미국이 고난을 겪는 현장을 봤다. 일본 반도체가 미국 시장을 침식하고 있었다.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 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 세 가지 기준이 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였다. 1982년 5월,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만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1983년 3월 15일 메모리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다. 1년 간에 걸친 철저한 기초조사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연구, 검토 끝에 내린 참으로 힘겨운 결단이었다. 1984년 3월말 까지 64KD램을 양산키로 하고 역산해 계획을 세웠다. 미국 마이크론, 일본 샤프사에서 기술을 도입했다.

기흥공장 부지는 당초 정부 특정 용지로 예정돼 있었지만 반도체 산업 중요성을 정부가 인식하게 돼 삼성반도체가 사용하도록 특별한 양해가 있었다. 1984년 5월 17일 기흥 공장이 준공됐다. 미국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 번째 반도체 생산국이 됐다.(1993년에는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가 됐다.)

전문가들은 삼성반도체 성공 요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삼성의 기업 정신, 부천 공장의 10여 년에 걸친 경험 축적, 세계 경제의 호황, 최신 최고 최염가 시설 설치, 재미 한국인 박사 등 고급 인력 유치 성공, 근면한 노동력 확보, 적합한 부지, 금융기관의 이해와 협력이다.

[유튜브- 삼성은 어떻게 반도체 산업을 시작했나]
https://youtu.be/_0dLZqdAp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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