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1951년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다. 김승헌-조순조의 4남 3녀 중 여섯 째다. 형 김명수는 농지개량조합 출장소장을 지냈고, 다른 형 김영수는 서울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할 때 만난 설난영(1953년. 전남 순천 출생. 성심여대 국문과 졸업)과 결혼했다.
영천국민학교에 다닐 때 부친이 빚보증을 잘못 서 돈을 날리는 바람에 판잣집으로 이사했다. 국민학교 졸업 뒤 대구로 가 경북중-경북고를 졸업했다. 고교 때 집이 대구 남산동으로 이사했다. "어느 방에서나 천장 틈새로 하늘이 보였고, 벌레가 기어다니는 볼품없는 집이었다"고 그 시절을 회상한 적이 있다.
1970년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1971년 부정부패 척결 전국학생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제적됐다. 그는 두 번의 제적, 두 번의 해고, 두 번의 감옥을 겪으며 24년 6개월 만에 서울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그는 심재권 전 의원의 권유로 '후진국 사회 연구회'에 들어가면 학생 운동에 눈 떴다. 2학년 때 김근태 전 의원을 만나 공활에 나서며 노동운동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수배돼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했다. 보일러공으로 입사해 한일도루코노조위원장을 맡았고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85년 서울노동자연합(서노련) 창립을 주도했고 1986년 5.3인천 사태로 구속되면 2년 6개월 간 복역했다. 1980년대에 김문수는 노동운동계의 지도적 인물이자 상징적인 존재였다.
1990년 이재오 장기표 이우재 등과 민중당을 창당하며 대전환했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 비례 3번으로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그 해 대선에서는 민중후보 백기완을 지원했으나 1% 남짓 저조한 득표를 기록한다. 1년 간 택시기사로 일했다. 1994년 이재오 이우재 등과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경기도 부천 소사에 출마해 박규식 의원(자민련), 박지원 후보(새정치국민회의)를 제치고 당선했다. 16-17대도 이곳에서 당선 3선 의원이 됐다. 이후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재선까지 했다. 경기도지사 시절 주요 업적이 경기순환버스 도입, GTX 기획, 수도권 통합요금제 도입 등이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8.7%를 득표하며 박근혜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2016년 대구로 내려가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과 맞붙었으나 3만 3500여 표 차로 대패했다. 2018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와 맞붙었으나 역시 패배했다. 2020년 3월 21일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조원진 전 의원이 하는 우리공화당과 합당해 자유공화당을 만들었으나 탈당했다. 이후 전광훈 목사 등과 함께 기독자유통일당 활동을 했다. 2022년 9월 윤석열 정부 경사노위위원장을 맡기까지 특별한 일이 없었다. 2024년 8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됐다.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을 엄벌하겠다는 것이 첫 번째 업무지시였다.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 "문재인은 정신이상자" "태극기세력 중심으로 정치권 통합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강경 보수 입장을 보였다. 대선 후보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 보수 후보 중 1위를 기록했으나 중도 확장성에 한계가 뚜렷한 단점이 있다.
<아직도 나는 넥타이가 어색하다> <나의 길 나의 꿈> <김문수 스토리 청>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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