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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혼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치인

by 혼맥박사 2020. 10. 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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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 외교부 장관(이하 강경화)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이하 이일병)가 구설에 올랐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와중인 10월3일 요트를 사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탄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는 "부적절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강경화 장관은 10월4일 오후 외교부 실·국장급 간부들과 회의 자리에서 "국민들께서 해외여행 등 외부활동을 자제하시는 가운데 이런 일이 있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남편에게 귀국을 요청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남편이) 워낙 오래 계획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간 것이라서 귀국하라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본인도 잘 알고 있고 저도 설명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결국 본인이 결정해서 떠난 거고 어쨌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강경화-이일병은 연세대 영자신문사 선후배 사이다. 이일병이 1953년생으로 강경화보다 두 살 많다. 이일병은 언론인터뷰에서 강경화에 대해 “사람들과 관계가 굉장히 좋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모범생”이라고 평가했다. 


강경화의 인사청문회 당시 딸의 이중국적 문제가 논란이 됐다. 이일병이 1984년 미국 매사추세츠에 유학 당시 큰 딸을 낳았다. 큰 딸은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자연스럽게 이중국적자가 됐고, 2006년 스스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택했다. 그러나 엄마가 외교장관 후보자로 논란이 되면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2018년 7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엄마가 외교부 장관을 하는데 딸이 미국인이면 미국과의 외교에서 이해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이런 부분을 딸에게 설명하자 흔쾌히 다시 한국 국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는게 설명이었다.

 

강경화는 1955년 4월 7일생으로 고향은 서울이다. 제28대 외교부 장관이다. 아버지는 평양 출신의 KBS 아나운서였던 강찬선이고 어머니는 유경환이다. 고향이 평양인 강찬선은 1947년 평양방송에서 아나운서를 시작했고 국립예술극장으로 옮겨 활동하던 중 1.4후퇴로 부산에 피난 생활을 하던 1951년 아나운서를 모집하던 KBS에 들어가 1980년대까지 활동했다. 임택근 황우겸 등이 동기다.

 

강찬선은 한국아나운서클럽을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48년 8월15일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방송'으로 시작한 '대북 방송'은 1972년 11월11일 0시를 기해 중단됐는데 마지막 방송을 한 사람도 강찬선이다.

 

강경화가 10살 때인 1964년 강찬선은 미국의 소리로 파견 근무를 나가게 돼(장기범 강익수에 이어 세 번째 파견이었다) 가족이 같이 미국 워싱턴으로 이주해 2년간 살다 한국에 돌아왔다. 당시 아버지를 따라 바이올린을 들고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를 탔던 강경화는 귀국 이후 이화여자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KBS 영어 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2년 간 활동하며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이일병과 결혼했다.

 

강경화는 결혼 이후 다시 이일병과 유학을 떠나 1980년 8월 메사추세츠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를 받았고 1984년 2월 같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김재순 박준규 이만섭 국회의장의 국제 비서관, 세종대 영문학과 조교수를 거쳐 1998년 외교통상부 보좌관으로 특채되며 외교부와 인연을 맺었다. 외교부 국장으로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여성지위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의 신임을 받았고 2007년 1월에는 유엔인권 부대표가 됐다. 2013년 유엔인도지원조정실 사무차장보가 됐다.


이일병은 1953년 1월 24일생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생년월일이 같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일리노이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메사추세츠대에서 전산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1985년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2014년 정년보다 3년 일찍 은퇴해 거제에 살며 현재 연세대 명예교수로 있다.  은퇴 후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으로 베트남에 가 학생들에게 정보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일병은 모터사이클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 모터사이클을 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 아이오와주 농장에서였다. “흥분과 자유로움을 느꼈다”는게 그가 모터사이클에 빠진 이유다. 연대 교수가 되면서 본격 라이더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일병은 2005년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탈 때는 집사람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취미삼아 영어로 된 ‘모터사이클 잘타는 법’이란 책을 공동으로 번역하면서 조금씩 설득해 나갔다. 결국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모터사이클도 안전하게만 탄다면 행복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강경화-이일병은 이현지 이예지 이준녕 등 2녀 1남을 뒀다. 

 

강경화의 시아버지(이일병의 부친)인 이기을 연세대 경영대 명예교수(이기을)는 2020년 10월13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유족으로는 부인 강금봉아 여사와 1남 3녀가 있다. 이기을은 1923년 함경남도 북청 출신이다. 일제 말기 이른바 '중앙고보 5인 독서회' 사건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1941년 독서회가 일제에 발각돼 회원들이 체포되면서 이기을도 함흥교도소에서 몇달 간 옥살이를 했다. 석방 후 이 교수는 1943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 상과에 입학했으나 그해 말 학병에 지원했고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이 교수는 1947년 연희전문, 1952년 연대 상경대를 졸업했다. 1955년 연대 경영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돼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이 교수는 지난 2010년 모교인 연세대 경영대학에 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이기을은 독립유공자로 등록됐다. 2020년 11월 3일 이기을의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자 선정 관련 안건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유족에게 대통령 표창이 수여된다. 고인은 생전인 지난 1983년에도 한 차례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했으나 탈락했다. 이번에는 지난 4월 신청서를 낸 지 7개월 만에 훈격이 결정됐다. 포상 심사 기준 등이 당시와 일부 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훈격이 인정됨에 따라 유족은 매월 74만3천원의 보훈 급여를 받게 된다.


오경화(5년 내내 강경화)’란 말이 회자될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020년 1월 20일 개각에서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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