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차인표씨(이하 차인표)는 1967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93년 MBC 공채(22기, 심은하 등이 입사 동기)에 합격해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충암고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프서 경제학과에 들어갔으나 중퇴하고 유학길에 올라 미국 럿거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1969년생인 배우 신애라와 결혼했다. 당시 주례는 한완상 전 부총리였다. 한 전 부총리는 그 사연을 한겨레 2012년 9월12일자 ‘한완상 비망록’에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1995년 3월10일 오후 3시 인기 절정인 탤런트 차인표와 신애라의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신랑 인표는 생각이 깊은 젊은이다. 일찍이 이스라엘 키부츠에 들어가 사회주의적 공동체 생활도 해보았다. 철학 있는 연기자로서, 사회적 예언자의 구실도 담당할 만한 지식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부 애라는 착한 젊은이다. 우리 부부와 그 부모가 막역한 사이여서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과 교회 안에서 서로 친구로 지냈다. 특히 애라의 어머니는 생각이 아주 깊은 분이다. 진보적 식견과 세련된 문화의식을 지녔다. 애라가 모친의 취향에서 배운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혼식장인 횃불선교회관에는 1000여명의 하객이 들어차 열기가 가득했다. 카메라맨 50여명의 극성스런 취재 경쟁 탓에 신랑 신부가 밀려날 뻔했다. 축가까지 유명한 가수 윤복희가 자청해서 부른 탓에 결혼식이 시장 바닥처럼 어수선했지만 주례의 위엄으로도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신랑 신부가 직접 써서 읽은 ‘사랑 서약서’ 고백은 보기 좋았다.
신애라는 1989년 드라마 ‘천사의 선택’으로 데뷔했는데 TKC PICTURES 소속으로 히즈유니버시티 기독교상담학 석사를 마쳤다. 신애라는 방송에 출연해 "부모님이 다 서울대 출신이다. 엄마는 사범대 국문과 출신이었다. 라디오 프로나 다큐멘터리 원고는 물론 드라마 보조 작가까지 하셨다. 아버지는 서울대 작곡과 출신이다. 부모님은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다. 공부 잘하는 부모에게 공부 잘하는 자녀가 나오는 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신애라의 모친 우영미는 지난 2004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차인표-신애라는 차정민(1998년생), 차예은(2005년생), 차예진(2008년생) 등 1남2녀를 뒀다. 차정민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차인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2009)과 <오늘예보>(2011) 등 세권의 책도 썼다.
차인표의 부친은 해운회사 (주)우성해운을 창업해 회장을 지낸 차수웅씨이다. 모친은 신영순. 우성해운은 1974년 창립 이후 수출 3000억 달러를 달성해 국내 해운업계 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차인표는 차수웅의 3남 1녀 중 차남이다. 형 차인혁이 있으며 동생 차인석은 2013년 10월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차인표는 2018년 11월 방송에 출연해 “동생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제, 자매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저도 앞으로도 남은 형제와 그렇게 지내고 싶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길지 않다. 그 때 그 때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여동생이 있다.
지분 55%를 갖고 있던 차수웅은 자매 중 리더십이 제일 좋은 차인표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었으나 차인표는 물론이고 4남매 모두 회사 상속을 거절했다. 차수웅은 우성해운 경영권을 2대 주주 홍용찬 사장에게 넘겼다. 2006년 차수웅 전 회장의 은퇴식에서 차인표는 가족대표로 참석해 “내가 했던 드라마에선 주로 아들이 회사를 상속하거나 주주총회 같은 걸로 회장이 쫓겨났는데, 이렇게 기분 좋게 헤어지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차인표는 형 차인혁이 전국 4등을 한 수재라고 밝히기도 했다. 차인혁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삼성SDS 상무, SK텔레콤에서 IoT분야 사업본부장이자 전무를 지냈고 2019년 9월, CJ에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3개월 만인 12월 30일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가 됐다. 차인표의 동생 차인석 역시 학창시절 수재로 미국 MIT 공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RBS 스코틀랜드왕립은행에서 전무로 재직하다가 암에 걸렸다. 투병 생활 끝에 2013년 10월 17일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금융전문가였던 그는 한국에 국제금융 파생상품을 전파시킨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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