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활비는 누이동생 명희가 상당 부분 보조를 해줬는데 나는 지금도 명희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명희는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줬고 늘 따뜻한 마음씨로 나를 감싸줬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여준 것도 명희였고, 아버지가 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 마지막까지 내 편을 들어서 아버지를 설득하려 한 것도 명희였다. 도망자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나는 경제적으로 명희 덕을 많이 봤다.”
이병철의 큰아들 이맹희는 자서전에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맹희의 말이 아니어도 신세계그룹을 이끄는 이병철의 막내딸 이명희는 ‘이병철의 딸 가운데 가장 성공한 딸’이다.
이명희는 주식 가치로 따졌을 때 한국 최고의 여성 부자 중 한명이다. 2014년 11월24일 기준으로 1조3916억5500만원에 달한다. 2002년에 관련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여성 부자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2020년 4월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주식 부자 1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다. 주식재산 가치는 4월7일 기준 2조6천860억원이다. 홍 전 관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주식 5천415만3천600주(0.91%)를 보유하고 있다. 이명희가 보유한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 가치는 9천840억원에 달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1943년생으로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한 이명희는 대다수 막내딸이 그러하듯 이병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자녀로 알려져 있다. 이병철은 삼성그룹 회장 직에서 물러난 후 일본을 방문할 때나 유명인들을 만날 때 꼭 이명희를 함께하도록 해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이명희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대학 동창인데 한때 유통 명가 두 여성 CEO의 대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명희가 처음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은 아니다. 1967년 오빠 이건희가 결혼하던 해 정재은과 결혼한 이명희는 한동안 가정주부로 생활했다. 그러나 막내딸의 사업 수완을 눈여겨봤던 이병철은 37세 때인 1979년 2월 이명희를 신세계백화점 영업담당 이사로 임명했다. 이후 1980년 신세계백화점 상무, 1997년 신세계백화점 부회장에 올랐고 1998년 신세계그룹 회장이 됐다.
이병철은 이명희가 출근하기 하루 전날 세 가지 가르침을 줬다고 한다. 첫째, 의심스러워 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마라. 둘째, 남의 말을 경청하라. 셋째,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평소 부친의 직관력과 관련한 기사를 복사해 수첩에 갖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이명희는 2005년 1월호 신세계 사보에서 아버지 이병철을 이렇게 회고했다. “선대 회장께서 가장 힘쓴 것이 인재 육성이었다. 선대 회장께서는 성공한 일을 다시 돌아보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으셨다.”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분리된 것은 1997년 4월이다. 1997년 당시 백화점과 조선호텔만 운영하고 있던 신세계그룹의 총매출은 1조8000억원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13년엔 총매출이 23조원을 넘어섰다. 16년 만에 2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유통 명가’라는 별칭에 걸맞게 1993년 처음 문을 연 국내 최초의 할인점 이마트에서 올리는 매출만 15조원이 넘는다. 이명희는 이병철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경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버지 이병철의 가르침대로 자신이 결재를 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믿고 맡기는 ‘신뢰 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0년 동안 CEO로 있으면서 신세계를 크게 발전시킨 구학서 신세계 회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명희는 정재은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정재은은 3대, 5대 국회의원과 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의 차남이다. 서울대 공대, 미국 컬럼비아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정재은은 삼성가 사위가 되고 2년 후인 1969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전자 대표이사, 삼성물산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현재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다. 1997년 신세계그룹이 삼성에서 분리된 뒤에는 조선호텔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병철의 특명을 받고 미국에 유학 중이던 손정의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정재은의 형은 고 정재덕 신세계 고문이다. 정재덕은 경기고, 미국 노스이스트미주리 주립대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과 연합철강 사장 등을 지냈다. 정재덕의 장녀 정다미 명지대 교수는 김민녕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와 결혼했다. 김민녕의 부친은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이다. 김동조의 3녀 김영자는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부인이고, 4녀 김영명은 정몽준 전 국회의원의 부인, 차녀 김영숙의 딸 손정희의 남편은 홍정욱 전 헤럴드미디어 회장이다.
정용진, 이종사촌 이재용과 경복고 동문
이명희-정재은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가 브라운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고현정과 결혼했다. 두 사람의 드라마 같은 만남은 결혼 당시 화제였다. 뉴욕 브로드웨이를 찾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관람하고자 했던 고현정이 영어가 서툴러 어려움을 겪을 때 현장에 있던 정용진이 그를 알아보고 도움을 준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저녁을 사겠다고 한 고현정은 약속 장소로 가던 길에 지갑을 잃어버려 두 사람이 함께 지갑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가까워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 8년 만인 2003년 헤어졌다. 정용진은 고현정과의 사이에 정해찬·정해인 1남 1녀를 뒀다. 정용진이 양육권을 갖고 있는 두 자녀는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진은 지난 2011년 5월, 12세 연하인 플루티스트 한지희와 재혼해 2013년 11월 이란성 쌍둥이를 얻어 2남 2녀를 둔 ‘다둥이 아빠’가 됐다. 한지희는 대한항공 부사장을 지낸 한상범씨와 프렌치 레스토랑 비손 대표인 김인겸씨의 딸이다. 한 음악회 모임에서 정용진을 만난 것이 결혼으로 이어졌다.
한지희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예비음대를 졸업했고,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이화여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은 후 다시 일본 무사시노 음대에 유학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서울바로크합주단·원주시립교향악단에서 객원 연주자로 활동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선화예고에 출강하고 있고, 성신여대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10월2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지희 플루트 독주회’는 2만원인 입장권이 전석 매진됐다. 정용진을 비롯한 신세계그룹 경영진도 연주회를 찾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경복고 동문인 정용진은 미국 유학 후인 1994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1995년 신세계로 옮겼다. 일본 도쿄사무소에서 근무한 뒤 신세계백화점 기획조정실 상무로 진급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았다. 현재 실질적으로 신세계를 이끌고 있는 정용진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리고 한때 트위터 팔로워가 3만명이 넘을 정도로 활발하게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도 했다.
정용진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은 서울예고, 이화여대 미대를 나왔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입사해 2009년 신세계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유경은 하남 유니온스퀘어 같은 교외형 복합쇼핑몰과 온라인몰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경은 2001년 초등학교 동창인 문성욱 신세계인터내셔날 글로벌패션 1본부장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슬하에 문서윤·문서진 2녀를 뒀다. 미국 시카고 대학과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문성욱은 지난 11월까지 이마트 부사장으로서 해외 사업을 총괄했다. 중국 이마트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매각 작업을 주도해왔는데 12월1일 인사에서 패션 부문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쪽으로 직책이 바뀌었다. 문성욱의 아버지는 문청 전 KBS 보도본부장이다.
[한국의 혼맥]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ssjm21.tistory.com/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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